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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다 맛있는 외교 이야기

아랍 음식 외교와 만사프 협상 테이블 위의 권력

by yellowsteps4u 2025. 7. 22.

 

 

음식은 문화의 거울이며, 동시에 권력의 언어이기도 하다. 특히 외교의 세계에서 음식은 단순한 식사가 아닌, 메시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 아랍 세계에서는 전통 음식인 '만사프(Mansaf)'를 중심으로 한 식탁 외교가 놀라운 설득력과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이 글에서는 만사프를 중심으로 아랍권 국가들이 어떻게 음식을 외교 수단으로 활용했는지를 탐구하며, 그 정치문화적 의미를 깊이 들여다본다.

아랍 음식 외교와 만사프 협상 테이블
아랍 음식 외교와 만사프 협상 테이블

목차

  1. 1. 만사프란 무엇인가
  2. 2. 아랍 음식 문화와 식탁의 위계
  3. 3. 식탁 위의 외교 전략
  4. 4. 만사프와 외교 사례
  5. 5. 음식 외교의 한계와 전망

1. 만사프란 무엇인가

만사프는 요르단,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레반트 지역에서 널리 사랑받는 전통 음식으로, 양고기와 쌀, 말린 요구르트를 발효시켜 만든 '자바디(Jameed)' 소스로 조리된다. 커다란 접시에 담겨 공동으로 먹는 방식은 아랍의 공동체 정신을 상징한다.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공동체, 가족, 부족 간 연대를 상징하는 행위로 간주되며, 결혼식, 장례식, 종교 행사뿐 아니라 국가 행사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만사프는 이슬람 전통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음식 제공은 꾸란에서 강조하는 환대(Hospitality)와 연관되며, 신의 뜻을 따르는 행위로 여겨진다. 따라서 외교 무대에서 만사프를 대접하는 것은 상대국에 대한 문화적 존중을 표현하는 동시에, 이슬람적 가치를 공유하려는 의지를 나타낸다.

2. 아랍 음식 문화와 식탁의 위계

아랍의 식문화에서 식탁은 엄격한 위계와 예절이 존재한다. 손님은 최상의 자리에 배치되고, 가장 연장자나 중요한 인물이 먼저 식사를 시작한다. 이런 식의 구조는 단순한 예절을 넘어 정치적 상징으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한 국가의 외교관이 식탁에서 중앙에 앉는다는 것은 그에 대한 최고의 예우를 의미하며, 동시에 외교적 동등함 혹은 우위를 암시할 수 있다.

식사의 메뉴와 순서, 사용하는 재료들 역시 상징성을 가진다. 낙타 고기와 같은 고급 재료는 중요한 손님에게만 제공되며, 이는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이런 맥락에서 만사프는 ‘최고의 환대’를 의미하며, 아랍 지도자들은 이 음식을 통해 자신의 위상을 표현하고, 외교적 파트너에게 우호적 태도를 드러낸다.

3. 식탁 위의 외교 전략

음식은 외교 전략의 중요한 수단이다. 격식을 갖춘 국빈만찬은 물론, 보다 비공식적인 식사 자리에서도 음식 선택과 구성은 철저히 계산된 외교 전략의 일환으로 작용한다. 아랍권에서 만사프가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그 상징성과 감정적 연대감을 불러일으키는 힘 때문이다. 음식은 언어보다도 직접적인 감각에 호소하고, 심리적 장벽을 낮추는 효과를 지닌다.

실제로 중동 평화회담 등 민감한 외교 현장에서는 식사 시간을 길게 확보하고, 이를 통해 회담의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고자 한다. 특히 만사프는 정통성과 전통을 강조하며, 종종 협상에 앞서 상호 신뢰를 쌓는 자리에서 제공된다.

4. 만사프와 외교 사례

2017년, 요르단의 압둘라 2세 국왕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국빈 만찬으로 만사프를 제공했다. 이 만찬은 요르단의 전통을 존중하는 동시에, 미국과의 외교적 친밀함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평가되었다. 미국 언론에서도 이 만찬은 "문화적 외교의 정수"로 보도되었다.

또한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란과의 긴장 완화를 위한 비공식 회담에서, 전통적인 밥과 고기 요리를 통해 ‘형제의 식사’라는 분위기를 연출한 바 있다. 쿠웨이트와 UAE도 주요 국가와의 문화 교류 행사를 통해 자국 음식을 외교적 도구로 활용해 왔다. 이는 단순한 음식 제공이 아니라, 자국의 문화 정체성을 알리고 외교적 우호를 확보하는 전략으로 기능한다.

5. 음식 외교의 한계와 전망

물론 음식 외교에도 한계는 있다. 다문화 사회에서 음식의 상징성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으며, 음식이 특정 종교나 민족 중심으로 구성될 경우 외교적 배제감을 유발할 수 있다. 또한 글로벌 미디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는 음식 이미지가 때로는 정치적 논쟁으로 번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한계를 넘어서 음식은 여전히 가장 효과적인 문화 소통 수단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특히 아랍 국가들은 음식 외교를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알리고, 관광과 투자 유치를 위한 전략적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디지털 외교 시대에는 음식 사진과 영상 콘텐츠가 소프트 파워로 작동하며, 음식 외교는 온라인상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나의 생각

아랍 세계의 식탁은 그저 음식을 나누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곳은 때로는 조용한 협상장이었고, 때로는 권력의 향기를 풍기는 무대였다.
만사프는 뜨거운 양고기보다 더 뜨거운 의미를 품고 있었고, 숟가락을 드는 순서 하나에도 의도가 숨어 있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외교를 ‘말’로만 이해해왔던 건 아닐까? 하지만 아랍의 식탁을 보고 있으면,
말보다 강력한 건 이고, 식사 시간에 흐르는 정서다.
음식은 논리를 무너뜨리고, 마음을 여는 아주 유연한 언어다.

앞으로의 외교는, 그 나라의 대표 요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에 따라 설득력도 달라질 것이다.
기억에 남는 식탁은, 기억에 남는 외교다.
그리고 나는 그 테이블 위에 놓인 한 접시의 만사프가 세상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