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셜이라는 나라를 아시나요? 아마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어요. 저 역시 여행을 준비할 때까지는 그저 지도 위의 작고 예쁜 섬일 뿐이었죠. 그런데 그곳에서 뜻밖에도, 제 인생 첫 럼주를 마시게 됐습니다. 관광객들이 흔히 참여하는 투어 중 하나가 ‘럼주 양조장 방문’이었는데, 솔직히 처음엔 큰 기대가 없었어요. 하지만 한 잔 들이켠 순간,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죠. 코코넛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바닐라의 달콤함이 목 뒤로 부드럽게 미끄러져 내리는 느낌이랄까요. 평소 막걸리나 소주처럼 익숙한 술만 마시던 제게는 꽤 새로운 경험이었고, 동시에 문득 궁금해졌어요. 도대체 럼은 왜, 어떻게 세계인의 잔에 오르게 된 걸까?
설탕 제국의 탄생: 달콤함 뒤의 식민 논리
사탕수수는 언제나 남국의 태양 아래 자라지만, 그 뿌리는 종종 피와 얽혀 있다. 유럽이 설탕에 탐닉하게 된 17세기 후반, 카리브해는 제국주의의 가장 달콤한 전장이 되었다. 쿠바는 특히 그 중심에 있었고, 미국과 유럽의 상류층은 이 조그만 섬의 설탕 덕에 오후의 디저트를 완성할 수 있었다. 설탕은 '소비'되는 쪽에선 평화로웠지만, '생산'되는 곳에선 늘 고통을 동반했다. 흑인 노예의 채찍 자국 위에 하얀 설탕이 쌓여갔다.
이 모든 과정을 모르고 럼을 마셨던 과거의 나는 그저 한 번쯤 색다른 술을 경험했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잔을 생산한 지역, 설탕이 어떻게 정제되고 어떤 역사적 경로로 잔에 담겨졌는지를 알아가기 시작하면서, 달콤함이라는 감각도 더는 단순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날 세이셜에서 마신 부드러운 럼 한 잔이, 나를 식민과 무역의 세계로 이끌 줄 누가 알았을까.
쿠바의 사탕수수: 노동 착취에서 혁명까지
설탕은 오랫동안 쿠바의 심장 같은 존재였다. 19세기 말, 이 섬나라는 세계 설탕 공급의 중심축이었고, 생산량의 대부분이 미국으로 수출되었다. 하지만 그 달콤함 뒤에는 착취가 숨어 있었다. 사탕수수밭을 누빈 노동자들은 대부분 흑인 노예였고, 이후에는 하루 12시간을 넘게 일하는 저임금의 인종 차별 구조 속에 놓여 있었다. 플랜테이션의 땅도, 정제 공장도, 수출 라인도 외국 자본의 소유였다. ‘독립국’이라는 명칭은 있었지만, 실상 쿠바는 자국의 설탕조차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는 나라였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피델 카스트로가 등장했다. 그는 단순히 정치 체제를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설탕 경제의 사슬’ 자체를 끊으려 했다. 카스트로가 국민 앞에서 "이제 우리는 우리 손으로 설탕을 만들고, 그 이익도 우리 것이 될 것이다"라고 외쳤던 장면을 영상으로 본 적이 있다. 그 장면은 혁명의 선언이자, 식탁 위 주권 회복의 외침처럼 느껴졌다. 설탕이라는 작물이 단순한 작물이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사실이 그때야 실감 났다.
럼과 문화 외교: 한 병의 술이 건넨 정치의 향기
럼은 사탕수수에서 추출되는 부산물인 몰라세스(Molasses)로 만든다. 말하자면 설탕을 빼고 남은 잔여물로 만든 술이지만, 그 존재감은 오히려 더 크다. 카리브해 전역에서 럼은 단순한 술이 아닌 ‘국가 브랜드’가 되었고, 해군 식량으로도 배급되며 제국 간 무역의 일환이 되었다. 쿠바의 럼 브랜드인 ‘바카디(Bacardi)’ 역시 19세기 후반에 세계 시장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1960년대 미국의 금수 조치 이후, 바카디는 쿠바를 떠났고, 쿠바 럼은 자국 내에 갇힌 존재가 되었다.
그런 상황을 모르고 마셨던 세이셜의 럼이 다시 떠오른다. 그 한 잔의 부드러움 뒤에 수출 통제, 외교 단절, 제재 목록 같은 단어들이 숨어 있었다니. 오늘날 쿠바 럼은 여전히 미국 내에서 유통이 금지돼 있고, 이는 단지 무역 이슈가 아니라 문화와 국가 정체성의 억제이기도 하다. 술 한 병에도 정치가 스며 있고, 그 정치가 어떤 나라에겐 생존의 문제가 된다.
쿠바 봉쇄 이후: 설탕 없는 세계, 고립된 식탁
1962년 미국의 대쿠바 경제 봉쇄는 설탕과 럼을 직격 했다. 가장 큰 수출 시장을 잃은 쿠바는 생존을 위해 사회주의 국가들과의 무역 재편을 시도했고, 국내 식량 배급도 급격히 축소됐다. 도시의 식탁에서 설탕이 사라지고, 럼의 생산량은 반 토막이 났다. 흥미로운 건, 쿠바의 럼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국가는 그것을 자존심으로 간직했고, 제한된 시장 속에서도 럼을 통해 국가 이미지를 유지하려 했다. 외교적 봉쇄 속에서도 ‘문화 외교’의 마지막 끈은 바로 이 술 한 병이었던 것이다.
국가 | 주요 이해관계 | 관련 역사적 사건 |
---|---|---|
쿠바 | 설탕 최대 생산국, 럼 수출 중심지 | 카스트로 집권, 미국 경제 봉쇄 |
미국 | 설탕 수입국, 쿠바산 럼 금수 조치 | 쿠바 미사일 위기, 헬름스-버튼법 |
스페인 | 쿠바 식민지 지배, 설탕 농장 운영 | 1898년 미국과 전쟁, 식민지 상실 |
영국 | 럼 문화 확산, 설탕 전 세계 무역 관리 | 카리브 식민지 운영, 대서양 노예무역 |
몇 해 전, 쿠바인 유학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에서는 설탕이 너무 저렴하고 흔해서 놀랐다고 했다. 쿠바에서는 설탕이 때때로 기름보다 귀한 대접을 받는다며, 어릴 적 한 달에 배급되는 설탕 몇 숟가락을 가족끼리 나눠 먹던 기억을 이야기해 줬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다시 세이셜의 양조장을 떠올렸다. 우리가 당연하게 마시는 그 잔의 뒤편에는, 누군가의 기다림과 절제, 그리고 국가의 기억이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 2025 4better-you.com All rights reserved.
'정치보다 맛있는 외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콩과 협정:두부로 보는 아시아의 자원 외교 (0) | 2025.08.21 |
---|---|
메콩강의 쌀 전쟁: 아시아 외교의 주방에서 벌어진 갈등 (0) | 2025.08.20 |
아편전쟁의 진짜 주인공, 차(茶)? 세계사를 바꾼 한 잎사귀의 비밀 (2) | 2025.08.18 |
소금의 권력: 권력의 언어가 된 소금 (2) | 2025.08.17 |
바나나 공화국: 열대 과일이 만든 정치사 (2) | 2025.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