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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다 맛있는 외교 이야기

연어와 양식 산업: 해양 생태계와 글로벌 소비의 이면

by yellowsteps4u 2025. 9. 7.

연어, 그 뒤에 숨은 문제

아이들과 외식을 나가면 자주 선택하는 메뉴가 연어초밥입니다. 마트 진열대에서도 연어 회, 훈제 연어, 연어 스테이크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보편화된 연어의 대부분은 자연산이 아니라 양식 산업에서 길러진 것입니다. 오늘날 연어는 고급 수산물이자 대중 식품이 되었지만, 그 이면에는 해양 생태계의 파괴, 곡물 시장과의 연계, 그리고 국제 무역 질서 속에서의 정치경제적 갈등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글은 연어 양식 산업의 성장과 그에 따른 환경·경제·사회적 파급 효과를 심층적으로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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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어 양식 산업의 성장과 글로벌 소비

연어는 20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북대서양, 알래스카, 러시아 연안에서 잡히는 자연산 어획물이 주류였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양식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며 자연산 공급을 대체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노르웨이 정부는 국가 전략 산업으로 연어 양식을 지원했고, 칠레는 외국 자본과 기술을 받아들여 세계 2위의 연어 생산국으로 부상했습니다. FAO에 따르면 2021년 전 세계 양식 연어 생산량은 약 270만 톤으로, 전체 연어 공급량의 70%를 차지합니다. 이는 1990년대 초반과 비교해 10배 이상 증가한 수치입니다 (출처:해양수산해외정보포털 참조)

그림 1. 세계 연어 생산량 추세 (1990~2022)

위 그래프는 1990년대 이후 자연산 연어 생산량이 사실상 정체된 반면, 양식 연어는 폭발적으로 증가했음을 보여줍니다. 자연산은 생태계 한계 때문에 더 이상 늘리기 어려웠고, 국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면서 양식 산업이 사실상 시장을 장악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연어는 세계 무역에서 대두, 옥수수와 함께 ‘글로벌 사료-식품 체계’에 포함되며 단순한 수산물이 아니라 국제정치경제의 전략적 품목이 되었습니다.

양식장이 해양 생태계에 미친 영향

그러나 양식 산업의 팽창은 해양 생태계에 중대한 부작용을 남겼습니다.

첫째, 사료 곡물 문제입니다. 연어는 육식성 어종이기 때문에 어분과 어유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양식 규모가 커지면서 어분 공급이 한계에 달하자 대두, 옥수수 같은 곡물이 대체재로 투입되었습니다. 이는 곡물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려 국제 곡물 가격 변동을 가속화시켰습니다. 즉, 연어 양식장은 해양 생태계와 곡물 시장을 동시에 압박하는 구조를 낳았습니다.(출처:해양연구소)

둘째, 항생제 사용 문제입니다. 노르웨이와 칠레의 양식장에서는 밀집 사육으로 인해 기생충인 연어 이(Sea Lice) 감염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이를 억제하기 위해 대량의 항생제가 사용되었고, 그 결과 내성균 확산, 해양 미생물 생태계 교란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칠레는 2015년 한 해에만 560톤 이상의 항생제를 사용해 국제 사회의 비판을 받았습니다.

셋째, 양식장 폐수와 해양 오염입니다. 양식장에서 흘러나오는 사료 찌꺼기, 배설물, 항생제 잔류물은 주변 해역을 산소 결핍 상태로 만들고, 바닷속 생태계 구조를 붕괴시킵니다. 실제로 노르웨이 북부 해역과 칠레 남부 피오르드에서는 양식장 주변 해저가 황폐화된 사례가 보고되었습니다.

연어와 양식산업
맛있게 요리된 연어 요리 한 접시

한국 식탁과 연어 수입 구조

한국은 연어 양식 기반이 약해 수요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국내 유통되는 연어의 90% 이상은 노르웨이 연어칠레 양식 연어입니다. 노르웨이는 항공으로 신선 연어를 공급해 ‘회용 고급 연어’ 시장을 장악했고, 칠레는 대량의 냉동·훈제 연어로 한국 가정과 외식 산업에 공급합니다. 관세청(2022)에 따르면 한국의 연어 수입액은 6억 달러 이상으로, 이는 참치, 명태와 함께 국내 수산물 소비 구조의 핵심을 이룹니다.

그림 2. 세계 연어 수출국 점유율 변화 (2000~2022)

그래프에서 보듯, 노르웨이는 세계 시장 점유율의 55%를 차지하며 독보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칠레는 30% 내외를 유지하며 뒤를 잇습니다. 한국 식탁에 오르는 연어는 결국 두 나라의 양식 구조와 직결되어 있으며, 한국 소비자 역시 해양 생태계 문제에서 책임을 공유하게 됩니다.

국제 규제와 지속가능성 논의

국제사회는 양식 산업의 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EU는 공동수산정책(CFP)을 통해 보조금을 환경 친화적 어업과 양식에만 지급합니다. 노르웨이는 국가 차원에서 ASC(Aquaculture Stewardship Council) 인증을 확대해, 항생제 사용량과 사료 곡물의 지속가능성을 관리합니다. 칠레 역시 연어 양식장에 대한 환경 평가를 강화했으나, 여전히 규제 집행력 부족 문제가 지적됩니다.

또한, 국제 시장에서는 ESG 기준이 강화되면서 글로벌 대형 유통업체와 레스토랑 체인들이 ‘지속가능한 연어만 공급한다’는 정책을 채택했습니다. 일본 스시 체인과 북미 대형 마트는 MSC·ASC 인증이 없는 연어를 판매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이처럼 양식 산업은 단순한 식품 문제가 아니라 국제 무역, ESG, 지속가능성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했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연어와 해양 생태계의 미래

연어는 오늘날 고급 식품이자 대중적인 메뉴로 자리 잡았지만, 그 이면에는 해양 생태계 파괴, 곡물 시장 왜곡, 환경 규제와 소비자 책임이라는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습니다. 연어 한 점을 먹는 순간, 우리는 노르웨이와 칠레의 양식장, 브라질의 대두 농장, 한국의 수입 항공 물류망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연어는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국제정치경제를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습니다.

앞으로 연어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소비자는 인증 라벨을 확인하고, 기업은 ESG 원칙을 철저히 따르며, 국제사회는 강력한 규제를 마련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연어와 해양 생태계가 공존할 수 있고, 한국 식탁 또한 지속가능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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