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고기와 기후 위기의 교차점
최근 한국에서도 양꼬치 거리와 샤부샤부 전문점이 늘어나며 양고기 수요가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고기가 생산되는 중앙아시아 지역은 지금 기후 변화로 인한 극심한 환경적 압박을 겪고 있습니다. 양과 염소를 중심으로 한 유목경제는 오랜 세월 지역 주민의 삶과 문화를 지탱해 왔지만, 급변하는 기후와 국제 무역 구조 속에서 지속 가능성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 글은 양고기 산업과 유목경제가 기후 변화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 의미를 한국 식탁까지 연결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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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유목경제와 양고기의 역사
중앙아시아에서 유목경제는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생활 기반이었습니다. 양고기는 단순히 단백질 공급원이 아니라, 가죽·모피·유제품과 함께 종합적인 생계 수단이었고, 초원 지역의 교역과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해 왔습니다. 몽골에서는 양 한 마리의 보유량이 가문의 부를 나타냈고, 카자흐스탄에서는 양 떼 이동을 중심으로 여름·겨울 초지를 오가는 계절적 이동 패턴이 사회 질서의 핵심을 이뤘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은 독립 이후 국제 원조에 의존했지만, 최근에는 유럽과 중동으로의 양고기 수출을 확대하며 성장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냉전 시기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소련 체제 하에서 집단농장을 통해 양을 관리했지만,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민영화 과정에서 가축 수는 크게 감소했습니다. 특히 카자흐스탄은 1990년대 초반 3,000만 마리에서 절반 이상 줄어들었고, 몽골 역시 경제 혼란과 기후 재해가 겹치며 가축 폐사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중국·중동 시장에서의 양고기 수요 확대,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인한 무역 자유화가 맞물리면서 사육 두수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FAO(2022) 통계에 따르면 몽골은 2021년 기준 양과 염소를 포함해 약 7,000만 마리를 보유해, 세계에서 가장 높은 1인당 가축 보유율을 기록했습니다 (출처: FAO).
기후 변화가 유목경제에 미친 충격
기후 변화는 중앙아시아의 유목경제를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습니다. 몽골의 경우 1999~2002년, 2009~2010년, 그리고 최근 2023년 겨울까지 Dzud(혹한과 가뭄의 복합재해)로 인해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폐사했습니다. 특히 2023년 Dzud는 1970년대 이후 최악의 혹한으로 기록되어, 전체 가축의 약 10%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산됩니다. 이는 곧 양고기 공급 부족으로 이어져 국내 가격이 급등했고, 농촌 빈곤층의 생계 기반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출처: UNICEF Mongolia).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듯, 2000년대 이후 몽골은 꾸준히 양 사육 두수를 늘려 2022년 약 1,400만 마리에 도달했습니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역시 점진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를 보입니다. 이러한 증가는 국제 무역 확대와 정부 보조금 정책 덕분이지만, 동시에 기후 변화라는 불안 요소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즉, 단순히 사육 두 수가 늘었다는 사실 뒤에는, 기후 리스크와 국제 곡물 가격 등 외부 요인에 크게 의존하는脆弱한 구조가 숨어 있습니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역시 기후 리스크에 취약합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2021년 대규모 가뭄으로 초지의 생산성이 40% 가까이 감소했고, 사료 곡물 부족으로 양 사육 농가들이 폐업 위기를 맞았습니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은 중앙아시아를 “기후 취약 지역”으로 규정하며, 향후 30년간 평균 기온 상승이 전 세계 평균보다 빠르게 진행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또한, 양고기 산업은 기후 변화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원인 제공자이기도 합니다. 양과 같은 반추가축은 다량의 메탄을 배출하며, 이는 온실가스 중 이산화탄소보다 28배 강력한 온실 효과를 갖습니다. IEA(2022)는 축산업에서 배출되는 메탄이 전체 농업 부문의 40% 이상을 차지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즉, 중앙아시아의 유목경제는 기후 변화로부터 위협받으면서도, 동시에 그 원인에도 기여하는 복잡한 구조에 놓여 있습니다.
양고기 산업과 국제 무역 구조
중앙아시아의 양고기 산업은 최근 국제 무역 네트워크 속에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카자흐스탄은 2015년 이후 중국에 양고기 수출을 본격화했으며, 2021년 기준 대중국 수출량은 전년 대비 30% 이상 증가했습니다. 이는 중국 내 중산층의 소비 증가와 맞물려 수입 수요가 확대된 결과입니다. 몽골은 일본과 한국에 냉동 및 가공 양고기를 공급하며, 외화 수입의 주요 원천으로 삼고 있습니다. 키르기스스탄은 러시아·카자흐스탄 등 유라시아경제연합(EAEU) 내 교역에서 비중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제 무역의 확대는 새로운 문제도 낳고 있습니다.
위 그래프는 2000년 이후 몽골에서 반복된 Dzud의 피해 규모를 보여줍니다. 2005년과 2010년에는 가축의 15%에 달하는 대규모 폐사가 발생했고, 이는 유목민 사회의 소득 감소와 식량 불안을 심화시켰습니다. 특히 최근 2023년 Dzud에서는 약 10%의 가축이 폐사해 국제 사회가 긴급 지원에 나섰습니다. 이러한 수치는 기후 변화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유목경제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구조적 요인임을 보여줍니다.
첫째, 중국과 중동 시장의 수요 급증은 현지 소비자 가격을 끌어올려, 농촌 빈곤층이 오히려 양고기를 소비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합니다. 둘째, 국제 곡물 가격 상승은 사료비를 높여 생산 원가를 압박합니다. 특히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옥수수·밀 가격이 폭등하면서, 사료 수입에 의존하는 카자흐스탄 농가들은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셋째, 국제 위생·검역 기준(SPS 협정) 강화로 수출 국가들은 고도의 위생 관리와 인증을 요구받고 있으며, 이는 소규모 유목민들에게 추가적인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출처: WTO).
이처럼 중앙아시아 양고기 산업은 전통적 유목경제에서 벗어나 점차 세계 시장과 맞물리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후 변화, 국제 곡물 가격, 검역 규제라는 복합적 도전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초원의 문제가 아니라 글로벌 식량 안보와 직결된 문제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지속가능한 유목과 정책적 대안
앞으로 중앙아시아 유목경제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몇 가지 대안이 필요합니다. 첫째, 기후 적응형 유목 정책입니다. 몽골 정부는 FAO와 협력해 조기 경보 시스템을 도입하고, 기후 재해 발생 시 가축 이동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둘째, 친환경 사육 방식입니다. 메탄 배출을 줄이는 사료 첨가제 연구나, 가축 밀도를 조절하는 방식이 국제적으로 논의되고 있습니다.
셋째, 국제 협력입니다. UNFCCC와 FAO는 중앙아시아를 기후 취약 지역으로 지정해, 기후 적응 자금과 기술 지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넷째, 소비자 인식 변화입니다. 한국과 일본 등 수입국 소비자들이 지속가능한 양고기 인증을 요구할 경우, 지역 유목민에게도 친환경적 방식으로 전환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알아야 할 일
양고기는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역사와 삶, 그리고 기후 변화의 압박을 함께 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즐기는 양꼬치 한 점은 사실상 몽골 초원과 카자흐스탄 목초지, 그리고 국제 무역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양고기를 소비하는 행위는 곧 유목경제와 글로벌 기후 체계에 직간접적 영향을 미칩니다.
앞으로 한국 사회는 양고기를 단순한 외식 메뉴가 아니라, 국제 식량 안보와 지속가능성 문제의 일부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앙아시아의 유목경제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후 적응 정책, 국제 협력, 그리고 수입국 소비자의 책임 있는 선택이 함께 요구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양고기 산업은 미래 세대와 공존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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