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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다 맛있는 외교 이야기

밀크티와 글로벌 낙농업: 젖소 산업과 기후 위기

by yellowsteps4u 2025. 9. 15.

밀크티 열풍에서 본 우유의 글로벌 여정

최근 몇 년간 한국에서 밀크티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하나의 문화적 트렌드로 자리 잡았습니다. 저 역시 가까운 카페에서 주문하는 버블 밀크티를 마실 때면, 그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 속에 숨어 있는 글로벌 낙농업의 그림자를 생각하곤 합니다. 우유는 멀리 뉴질랜드나 유럽의 목장에서, 혹은 미국의 대형 낙농 단지에서 출발해 복잡한 무역망을 거쳐 한국의 식탁과 카페로 흘러옵니다. 그러나 이 여정은 단순히 맛과 영양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적 차원의 기후 위기와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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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농업의 역사와 글로벌 무역

낙농업은 단순히 젖소를 기르는 일 이사의 인간 문명이 축적해 온 가장 오래된 식량 체계 중 하나입니다. 약 1만 년 전 중동 지역에서 시작된 가축화 이후, 우유는 이동이 어려운 액체 자원이었기에 다양한 가공품으로 변환되며 인류 식탁에 자리 잡았습니다. 고대 유럽에서는 치즈와 버터가 저장식품으로 발전했고, 인도에서는 우유가 종교적·문화적 상징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냉장 기술과 증기선, 냉동 운송선의 등장은 낙농업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습니다. 우유와 치즈는 이제 지역 자급 농산물이 아니라 국제 무역 상품이 되었고, 제국주의 시대 영국은 식민지에서 대규모 유제품을 들여와 자국 산업을 지탱했습니다. 20세기 들어 국제우유협회(International Dairy Federation, 1903년 설립)가 결성되면서 낙농업은 글로벌 차원의 산업 체계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 낙농업은 뉴질랜드, 유럽연합(EU), 미국이 지배하는 3강 체제를 형성합니다. 뉴질랜드는 전 세계 유제품 수출량의 약 30%를 차지하며, 국가 경제에서 유제품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GDP의 7%를 넘습니다. EU는 공통농업정책(CAP)을 통해 생산 보조금을 지급하며 농민의 경쟁력을 유지시키고, 미국은 곡물 사료 기반의 대규모 목축업으로 우유 단백질 가공품 시장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젖소 산업과 기후 위기
젖소와 밀크티

젖소 산업과 기후 위기

젖소 산업은 기후 위기와 직결됩니다. 젖소는 반추동물 특성상 장내 발효 과정에서 대량의 메탄을 배출합니다.

아래 그래프는 낙농업이 어떤 경로를 통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사료 생산(40%) 메탄 배출(35%)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운송과 가공 과정에서도 추가적인 탄소가 발생합니다.

낙농업 온실가스 배출 구조 파이 그래프
낙농업 온실가스 배출 구조

한 마리 소가 하루에 배출하는 메탄은 약 250~500리터로, 지구온난화 지수(GWP) 기준 이산화탄소의 25배 강력한 온실가스 효과를 냅니다. 낙농업 전체로 보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4%가 젖소 산업에서 발생합니다(IPCC, 2019).

문제는 단순히 대기 오염에 그치지 않습니다. 젖소 사육에는 막대한 물이 소요되는데, 우유 1리터를 생산하는 데 약 1,000리터 이상의 물이 사용됩니다. 또한 분뇨는 하천과 지하수 오염을 유발하고, 대규모 방목지는 토양 황폐화를 가속화합니다. 이 때문에 낙농업은 기후뿐 아니라 수자원·토양 관리 차원에서도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산업으로 지목됩니다.

더 나아가 젖소 복지 문제 역시 국제적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서 대량 사육되는 집약형 낙농 시스템은 동물권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이 또한 소비자 인식 변화와 맞물려 낙농업의 구조 전환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즉, 낙농업은 단순히 젖소에서 나오는 메탄 문제가 아니라, 사료 곡물 재배와 국제 물류까지 아우르는 복합적 구조 속에서 환경 부담을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글로벌 낙농 무역 구조와 경제적 파급

낙농 무역은 세계 경제에 막대한 파급력을 미칩니다. 뉴질랜드는 FTA 협상을 통해 아시아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며, 한국·중국·동남아에 유제품을 공급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습니다. EU는 CAP 보조금 정책을 통해 저렴한 유제품을 세계로 수출하지만, 이로 인해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소규모 낙농업자들이 몰락하는 부작용이 발생합니다. 미국은 옥수수와 대두 같은 곡물 사료를 활용해 대규모 젖소 단지를 운영하고, 분유·유청 단백질 같은 가공품을 수출합니다.

이 과정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유제품 의존 경제’에 빠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서아프리카 일부 국가는 EU산 분유 수입으로 인해 자국 낙농업이 붕괴했고, 이후 글로벌 가격 변동에 크게 흔들리는 취약 구조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낙농 무역이 단순히 경제적 이득의 문제가 아니라, 식량 주권과 국가 안보에 직결된 사안임을 보여줍니다. 다음 그래프는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세계 주요 낙농 수출국의 점유율 변화를 보여줍니다. 뉴질랜드는 꾸준히 점유율을 늘려 글로벌 1위 자리를 강화했고, 미국은 곡물 사료 기반 낙농업을 무기로 점유율을 확대했습니다. 반면 EU의 점유율은 점차 감소했지만 여전히 큰 비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글로벌 낙농 시장의 권력 구조가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잘 보여주며, 개별 국가의 무역 전략이 국제 식량 질서에 미치는 파급력을 드러냅니다.

세계 주요 낙농 수출국 점유율
세계 주요 낙농 수출국 점유율 그래프 변화

한국 소비 문화와 밀크티 현상

한국은 전통적으로 낙농업 기반이 약했지만, 1970년대 이후 학교 급식과 유제품 보급 정책으로 우유 소비가 늘어났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1인당 연간 소비량은 30kg 수준이었으나, 2020년에는 70kg을 넘어서며 두 배 이상 증가했습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22).

최근에는 밀크티 열풍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 패턴을 바꿔 놓았습니다. 버블티 전문점은 2010년대 중반 이후 급격히 늘어났고, SNS를 통한 ‘인증 문화’와 맞물리며 우유 소비를 촉진하는 효과를 냈습니다. 이처럼 단순한 음료 하나가 글로벌 낙농업 수요를 확대시키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소비문화가 국제 산업 구조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지속가능 낙농을 위한 국제적 대응

국제사회는 낙농업의 환경적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EU는 유럽 그린딜의 일환으로 2030년까지 축산 메탄 배출을 30% 감축하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뉴질랜드는 2025년부터 축산업 배출세를 도입해, 낙농업자들이 배출량에 따라 세금을 내도록 할 예정입니다. 영국과 덴마크는 식품 포장에 ‘탄소 발자국 라벨’을 붙여 소비자가 기후 영향을 고려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학적 연구도 활발합니다. 해조류(아스파라가롭시스 택시포르미스)를 사료에 섞으면 젖소의 메탄 배출을 60% 줄일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호주 CSIRO 연구진에 의해 발표되었으며, 곤충 단백질이나 발효 단백질을 사료로 활용하는 대체 기술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도는 ‘지속가능 낙농업’으로 전환하기 위한 핵심적인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며

젖소 산업은 인류에게 단백질과 칼슘을 제공했지만, 동시에 기후 위기를 심화시켜 왔습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의 균형입니다.

밀크티의 부드러운 달콤함 속에서, 우리는 지속가능한 낙농업과 책임 있는 소비가 결코 분리될 수 없음을 배웁니다. 한 잔의 음료가 보여주는 세계적 함의를 직시할 때, 비로소 우리의 선택이 미래 세대를 위한 답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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