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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다 맛있는 외교 이야기

슈퍼푸드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한국 식탁

by yellowsteps4u 2025. 8. 29.

얼마 전 저녁 뉴스를 보다가 ‘한국은 세계에서 식량 자급률이 가장 낮은 나라 중 하나’라는 보도를 접했다. 특히 밥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곡물과 과일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게 다가왔다.

문득 떠오른 건 몇 달 전 집 앞 마트에서 퀴노아와 치아시드를 장바구니에 담던 순간이었다. 다이어트와 변비에 좋다며 샀지만, 과연 이 곡물이 어디서 왔고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식탁에 올랐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뉴스를 보며 ‘내 건강을 위한 슈퍼푸드 소비가 사실은 다른 나라 농민의 삶과 우리의 상황이 얽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글에서 다룰 내용

슈퍼푸드와 무역 구조: 남북반구의 불균형

슈퍼푸드는 소비자들에게는 건강의 상징이지만, 생산지와 무역 구조를 살펴보면 심각한 불균형이 드러난다. 퀴노아와 치아시드는 주로 남미(페루, 볼리비아, 파라과이, 멕시코)에서 재배되고, 아보카도는 멕시코와 칠레가 세계 공급량의 절반 이상을 담당한다. 반면 소비는 북미와 유럽, 그리고 최근의 아시아 국가들(한국, 일본, 중국)에 집중되어 있다. 즉, 남반구에서 자원이 생산되어 북반구에서 소비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제무역센터(ITC, 2022)에 따르면, 페루와 볼리비아의 퀴노아 수출의 70% 이상이 미국과 유럽으로 향한다. 또한 멕시코는 세계 아보카도의 40%를 미국에 수출하며, 슈퍼볼 시즌에는 미국 내 아보카도 소비가 급증해 가격이 두 배 이상 치솟는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식품 소비를 넘어, 국제 외교와 무역 협상에서 슈퍼푸드가 전략적 상품으로 기능함을 보여준다.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著서 『세계화와 그 불만』에서 "세계화된 농산물 무역은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벌려놓으며, 그 사이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라고 지적했다. 슈퍼푸드 산업이 대표적으로 그러한 구조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슈퍼푸드 주요 생산국과 소비국 비교 (출처: ITC, USDA 2022)
품목 주요 생산국 주요 소비국
퀴노아 페루, 볼리비아 미국, 유럽, 아시아(한국·일본)
치아씨드 멕시코, 파라과이, 볼리비아 미국, 유럽
아보카도 멕시코, 칠레, 페루 미국, 유럽, 한국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슈퍼푸드의 생산과 소비는 철저히 남반구와 북반구의 구도로 나뉜다. 생산국은 자원을 대량으로 수출하지만, 수익의 상당 부분은 글로벌 유통기업과 북반구 소비자 시장에서 발생한다. 그 사이에서 소농과 지역 사회는 불평등한 몫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 2021)는 "슈퍼푸드 무역은 개발도상국의 외화 수입을 늘리지만, 동시에 지역 사회의 식량 불안정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라고 경고했다. 결국 슈퍼푸드는 단순한 건강식품이 아니라 국제무역의 불균형을 상징하는 정치경제적 아이콘으로 읽어야 한다.

한국 식탁과 슈퍼푸드: FTA와 수입 의존성

한국 소비자에게 슈퍼푸드는 더 이상 낯선 개념이 아니다. 대형 마트의 건강식품 코너에는 퀴노아와 치아시드가 진열되어 있고, 편의점 샐러드볼에는 아보카도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슈퍼푸드 대부분은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아보카도 수입량은 약 2만 톤으로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증가했다. 퀴노아와 치아씨드 역시 대부분 페루, 멕시코, 파라과이에서 수입된다.

이러한 수입 구조의 배경에는 자유무역협정(FTA)이 있다. 한국은 칠레, 페루, 멕시코 등 슈퍼푸드 주요 생산국과 FTA를 체결하면서 관세 장벽이 낮아졌고, 슈퍼푸드 수입이 급증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보고서에서 "FTA 확대 이후 슈퍼푸드 수입은 꾸준히 증가해 한국 식탁에서 '건강식품'이라는 새로운 소비 카테고리를 형성했다"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러한 수입 의존이 한국의 식량 안보와 직결된다는 점이다. 경향신문(2023.06.15)은 "한국의 식량 자급률은 45개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0%에도 미치지 못하며, 슈퍼푸드와 같은 수입 건강식품의 소비 확대는 단기적으로는 다양성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입 의존도를 심화시킬 수 있다.

한국의 슈퍼푸드 수입 현황 (2022,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품목 수입량 (톤) 주요 수입국
아보카도 20,000 멕시코, 페루, 미국
퀴노아 1,500 페루, 볼리비아
치아씨드 800 파라과이, 멕시코

이 표에서 보듯, 슈퍼푸드는 한국 내 생산이 사실상 전무하고 대부분 수입에 의존한다. 특히 아보카도는 멕시코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만약 무역 갈등이나 물류 차질이 발생할 경우 소비자 가격이 급등하거나 공급이 끊길 위험이 있다. 실제로 2022년 멕시코산 아보카도 수입이 일시 중단되자 국내 유통가에서 가격이 30% 이상 뛰어오른 사례가 있었다.

연세대학교 국제학부의 김현우 교수는 인터뷰에서 "한국의 슈퍼푸드 소비는 세계화된 무역 구조 덕분에 가능하지만, 그만큼 글로벌 정치·경제 환경에 취약하다"라고 지적했다. 즉, 한국인의 건강을 위한 선택이 역설적으로 한국 식탁의 불안정성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식량 안보의 관점에서 본 슈퍼푸드

슈퍼푸드 논의를 한국적 맥락에서 바라보면, 식량 안보라는 민감한 문제가 드러난다. 농림축산식품부(2022)에 따르면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20% 수준으로, OECD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이는 일본보다 낮은 수치이며, 쌀을 제외하면 밀, 옥수수, 콩 등 대부분의 주요 곡물을 해외에 의존한다. 이런 상황에서 슈퍼푸드 소비의 확대는 단기적으로는 식단의 다양성을 주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입 의존도를 심화시키는 양날의 검이다.

 

한국 곡물 자급률 추이
한국 곡물 자급률 추이

▲ 한국 곡물 자급률 추이 (1990~2022, 출처: 농림축산식품부)

그래프에서 보듯, 한국의 곡물 자급률은 1990년대 초반 40%대에서 2022년 현재 20% 수준까지 꾸준히 하락했다. 식량 주권이 점점 약화되는 가운데, 퀴노아·치아시드·아보카도 같은 슈퍼푸드 소비는 더욱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게 만든다. 만약 국제 무역 갈등이나 물류 차질, 기후 위기 같은 외부 변수가 발생한다면 한국 소비자는 가격 급등과 공급 불안정을 동시에 경험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으며 한국 내 수입 원가도 급격히 올랐다. 당시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은 보고서에서 "곡물 자급률이 낮은 한국은 국제 곡물 가격 변동에 가장 취약한 구조"라고 분석했다. 이는 슈퍼푸드 소비 역시 안전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아보카도의 경우 멕시코 정치 불안, 퀴노아와 치아시드는 남미 가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는 "식량 안보는 단순한 국가적 문제가 아니라 국제 무역과 정치 갈등에 의해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한국이 건강을 위해 소비하는 슈퍼푸드의 배경에는 식량 자급률 하락이라는 구조적 취약성이 겹쳐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윤리적 소비와 지속 가능성의 과제

슈퍼푸드를 둘러싼 무역 불균형과 식량 안보 문제는 결국 소비자의 선택과 직결된다. 윤리적 소비(Ethical Consumption)란 단순히 건강과 가격만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과정에서의 환경 파괴, 노동 착취, 무역 불평등까지 고려해 소비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최근 한국에서도 공정무역 커피나 초콜릿처럼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지만, 퀴노아·치아씨드·아보카도 같은 슈퍼푸드에는 아직 제도적 장치가 부족하다.

세계자원연구소(WRI, 2022)는 보고서에서 "글로벌 식품 소비에서 윤리적 소비는 기후 위기 대응의 핵심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옥스퍼드 대학의 환경학자 티모시 랭 교수는 "소비자는 자신의 장바구니를 통해 국제 무역 구조에 메시지를 보낸다"고 말했다. 즉, 한국에서 슈퍼푸드를 구매하는 소비자가 늘어난다는 사실 자체가 남미 농민들의 삶과 지구적 환경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다만 윤리적 소비에도 한계가 있다. 국제공정무역기구(Fairtrade International)는 "소비자의 윤리적 선택은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지만, 시장 구조의 불평등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소비자 개개인의 책임뿐 아니라 정부의 무역 정책, 기업의 공급망 관리가 함께 개선되어야 진정한 지속 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다.

윤리적 소비: 긍정적 대안과 한계 (출처: WRI, Fairtrade International)
긍정적 대안 한계와 과제
공정무역 인증 제품 구매 인증 제품의 가격 부담
지역 생산 대체재 소비 국내 대체재 부족
탄소발자국 표시 식품 선택 표시 제도의 불투명성
윤리적 소비 캠페인 참여 소비자 참여의 일관성 부족

윤리적 소비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소비자가 작은 변화를 실천하는 순간, 국제 무역 구조에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는 분명하다. 궁극적으로는 정부와 기업, 국제 기구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윤리적 소비가 일시적 캠페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지속 가능성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슈퍼푸드 그 이면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는 퀴노아,치아시드,아보카도

마치며:한국 소비자의 선택이 바꾸는 미래

헬씨 푸드 열풍으로 우리 동네에도 샐러드 가게가 많다. 덕분에 손 쉽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먹으면서도 건강에 좋은 한 끼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그 곡물이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남미 농민의 삶과 국제 무역, 그리고 한국의 식량 안보와 얽혀 있다는 점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게 느껴지는 선택이지만, 그것이 전 세계적인 파급력을 가진다는 사실이 낯설면서도 무겁게 다가왔다.

런던정경대(LSE) 사회학자 마틴 홀 교수는 "오늘날의 식품 소비는 단순히 개인의 건강을 관리하는 행위가 아니라 국제 정치경제 구조에 개입하는 가장 일상적인 외교"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 소비자가 퀴노아·치아씨드·아보카도 같은 슈퍼푸드를 고를 때, 그 행위가 곧 국제 무역 구조와 지구 환경에 메시지를 보낸다는 의미다.

물론 소비자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국제공정무역기구(Fairtrade International)는 "윤리적 소비는 불평등 구조를 단번에 바꾸지 못하지만, 정치와 기업의 변화를 촉진하는 강력한 시그널"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소비자 개인의 선택은 정부의 정책, 기업의 공급망 관리와 함께 지속 가능성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축이 된다.

결국 한국 소비자에게 남겨진 질문은 단순하다. 나는 건강을 위해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이 다른 누군가의 삶과 환경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이 작은 물음이야말로 앞으로 우리의 식탁을 넘어 한국 사회의 식량 전략, 나아가 국제적 책임과 연결될 것이다.

※ 다음 글 예고:   커피와 초콜릿: 달콤쌉싸름한 국제정치경제
한국의 곡물 자급률, 대체 식품 개발, 기후위기 시대의 식량 정책을 다룹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