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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보다 맛있는 외교 이야기

슈퍼푸드의 명암: 퀴노아·치아씨드 열풍 뒤에 숨은 진실

by yellowsteps4u 2025. 8. 28.

어머니는 건강에 늘 관심이 많으셔서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즐겨 보신다. 프로그램마다 추천하는 음식이 달라지곤 했는데, 어느 날은 퀴노아가 당뇨와 변비에 좋다며 밥에 섞어 지어주셨다. 처음에는 낯선 곡물이라 반신반의했지만, 생각보다 고소한 맛에 놀랐다.

요즘은 샐러드볼이나 다이어트 식단에서 흔히 퀴노아를 볼 수 있지만, 솔직히 나는 다이어트와는 거리가 멀어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가 해주신 밥 한 끼를 통해 처음으로 퀴노아라는 슈퍼푸드를 몸으로 경험하게 된 셈이다. 그때부터 ‘이 슈퍼푸드가 어디서 오고, 어떻게 다들 퀴노아를 먹게 되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글에서 다룰 내용

슈퍼푸드 트렌드의 시작과 글로벌 소비 열풍

2000년대 이후 웰빙과 다이어트 붐, 그리고 SNS 문화의 확산은 ‘슈퍼푸드(Superfood)’라는 개념을 전 세계로 확산시켰다. 슈퍼푸드는 항산화 물질, 단백질, 식이섬유 등 건강에 유익한 성분이 다량 함유된 식품을 지칭하며, Harvard Health Publishing은 “슈퍼푸드는 특정 질병 예방 효과보다도 균형 잡힌 식습관을 위한 ‘보조적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정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퀴노아, 치아씨드, 아보카도 등은 빠르게 ‘헬시푸드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 Statista(2023)에 따르면, 슈퍼푸드 시장 규모는 2015년 약 1,500억 달러에서 2025년에는 2,10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단순히 소비자들의 건강 트렌드에 국한되지 않고, 무역 구조와 정치경제적 파급력을 지닌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글로벌 슈퍼푸드 시장 성장 추이
글로벌 슈퍼푸드 시장 성장 그래프

▲ 글로벌 슈퍼푸드 시장 규모 추이 (2015~2025, 단위: 억 달러, 출처: Statista)

이와 같은 성장 배경에는 SNS의 영향력이 크다. 인스타그램이나 틱톡에서 ‘#QuinoaRecipe’ ‘#ChiaPudding’ 같은 해시태그는 수백만 건 이상의 게시물이 등록되어 있으며, 음식 소비가 단순한 영양 보충을 넘어 문화적·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의 경우, 퀴노아와 치아씨드는 한때 일부 프리미엄 마트에서만 볼 수 있었으나, 지금은 편의점 간편식이나 샐러드볼 전문점에서도 손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대중화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 열풍의 이면에는 중요한 질문이 숨어 있다. 이 슈퍼푸드가 생산되는 지역 사회와 환경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을까? 그리고 소비자의 건강을 위한 선택이, 글로벌 무역과 정치경제 구조 속에서는 어떤 명암을 만들어내고 있을까? 이 질문은 이후 퀴노아와 치아씨드의 사례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퀴노아 열풍과 안데스 농민의 역설

퀴노아는 안데스 지역에서 수천 년 동안 재배되어 온 전통 곡물이다. 풍부한 단백질과 필수 아미노산을 함유해 완전식품으로 불리며, 2013년에는 UN이 '세계 퀴노아의 해'로 지정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퀴노아는 당뇨와 변비 예방에 좋다는 건강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알려지며, 슈퍼푸드 열풍을 상징하는 식재료가 되었다.

그러나 퀴노아의 글로벌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현지 농민과 지역 사회에는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졌다. 페루와 볼리비아는 세계 퀴노아 수출의 80% 이상을 차지하는데, 수출 단가가 급등하자 현지 주민들이 정작 자신들의 주식이었던 퀴노아를 충분히 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2010년대 초반 퀴노아 국제 가격이 3배 이상 오르면서 농가 소득은 증가했지만 지역 사회의 영양 불균형은 오히려 심화되었다.

영국 일간지 The Guardian은 2013년 보도에서 "퀴노아 붐은 글로벌 시장에서는 성공이지만, 페루 농민들에게는 굶주림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웠다"라고 전했다. 국제농업개발기구(IFAD) 또한 "퀴노아 수출 수익이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농민 가정의 아이들이 오히려 영양 부족에 시달리는 경우가 늘었다"라고 지적했다.

퀴노아 국제 가격과 페루 내 소비 변화 (2008~2018, 출처: FAO)
연도 국제 가격 (USD/kg) 페루 내 소비량 (kg/인)
2008 1.2 12
2013 4.5 8
2018 3.8 7

이 표에서 보듯 퀴노아 가격은 2008년에서 2013년 사이 4배 가까이 올랐지만, 현지 소비량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가격 급등으로 도시 소비층과 해외 수출에 퀴노아가 집중되면서 농민 가정조차 퀴노아를 사 먹기 힘들어진 것이다. 이는 글로벌 슈퍼푸드 소비가 지역 사회의 식량 안보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역설로 꼽힌다.

이처럼 퀴노아는 한국이나 서구 사회에서는 '건강식'으로 소비되지만, 그 배경에는 무역 불균형과 지역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다. 건강을 위한 소비가 반드시 모두를 건강하게 만들지는 않는다는 사실이 퀴노아 사례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수퍼푸드의 이면
치아씨드가 담겨져 있는 건강한 샐러드 이미지

치아씨드 소비 폭발과 농업 구조의 왜곡

치아씨드는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수천 년 전부터 주요 식량이자 의약품으로 사용되어 왔다. 작은 씨앗이지만 오메가 3 지방산, 식이섬유, 단백질, 칼슘 등 영양소가 풍부해 현대 영양학에서 '완벽한 씨앗'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특히 채식주의자와 다이어트를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보카도와 함께 대표적인 슈퍼푸드로 꼽힌다.

이러한 특성은 SNS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인스타그램에는 'ChiaPudding' 혹은 'ChiaSeedRecipe' 해시태그가 수백만 건 이상 등록되어 있으며, 틱톡에서는 치아씨드를 활용한 다이어트 음료 영상이 수천만 조회 수를 기록했다. New York Times는 "치아씨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건강 상징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러나 수요의 급격한 확대는 원산지 농업 구조를 왜곡시키고 있다. 멕시코, 파라과이, 볼리비아는 치아씨드 수출에 크게 의존하게 되었으며, 국제 가격이 오르자 대규모 농장 기업들이 전통적인 소규모 농민들의 토지를 흡수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지역 생태계를 파괴하고, 소농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무역개발회의(UNCTAD)는 "치아씨드 수출 수익의 대부분이 대기업으로 집중되며, 지역 농민의 생활 안정에는 큰 기여를 하지 못한다"고 분석했다.

주요 국가별 치아씨드 수출 비중 (2020, 출처: UNCTAD)
국가 수출 비중 (%) 주요 수출 대상지
파라과이 35 유럽, 미국
멕시코 25 미국, 캐나다
볼리비아 20 유럽
기타 국가 20 글로벌 분산

위 표에서 볼 수 있듯 치아씨드 수출은 파라과이, 멕시코, 볼리비아 등 몇몇 국가에 집중되어 있으며, 그 대부분이 북미와 유럽으로 흘러간다. 이러한 편중은 지역 내 식량 안보와 농업 다변화를 어렵게 만들며, 환경적으로도 대규모 단작(單作) 시스템을 고착화한다. 토양 황폐화, 수자원 고갈, 생물 다양성 감소 등이 치아씨드 농업 확장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부작용이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UNAM)의 농업학자 마르코 가르시아 교수는 "치아씨드는 국제 무역에서는 '블랙 골드'로 불릴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니지만, 농민들의 삶을 개선하기보다는 기업 중심의 농업 구조를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슈퍼푸드 소비가 반드시 지속 가능성과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즉, 한국이나 서구권 소비자들이 건강을 위해 섭취하는 치아씨드 뒤에는 지역 농민들의 불평등한 현실과 환경 파괴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건강식품으로 인식되지만, 그 배경은 글로벌 무역의 불균형과 정치경제적 문제로 이어진다.

글로벌 소비의 역설: 건강과 불평등 사이

슈퍼푸드는 건강과 웰빙의 상징으로 소비되지만, 그 배경에는 복잡한 정치경제적 구조와 불평등의 그림자가 존재한다. 퀴노아와 치아씨드, 아보카도는 모두 ‘지속 가능한 먹거리’로 홍보되지만, 현지에서는 오히려 농민들의 식량 안보를 위협하고, 토지와 수자원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있다.

콜롬비아 보고타 대학의 경제학자 라우라 마르케스 교수는 "슈퍼푸드 산업은 글로벌 남반구의 자원을 북반구 소비자에게 이전하는 구조로 고착화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무역 현상이 아니라, 국제 불평등을 강화하는 정치경제학의 한 단면"이라고 지적한다.

환경학자인 미국 예일대의 에밀리 톰슨 교수는 "슈퍼푸드를 소비하는 행위는 개인에게는 건강한 선택일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 토지 집중, 수자원 고갈은 전 지구적 비용으로 전가된다"라고 설명한다. 즉, 소비자의 웰빙이 누군가의 생존을 대가로 유지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또한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슈퍼푸드 소비 증가가 농산물 가격 불안정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는 저소득 국가의 영양 불균형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라고 밝혔다. 이처럼 슈퍼푸드의 명암은 단순한 건강 담론을 넘어 국제 무역과 식량 안보 문제로 확장된다.

슈퍼푸드 소비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출처: IFPRI, Yale Environment Studies)
긍정적 효과 부정적 효과
개인의 건강 증진 (영양소 보충) 현지 농민의 식량 접근성 감소
웰빙 산업 성장 및 일자리 창출 토지 집중, 생태계 파괴
국제 교역 활성화 가격 불안정과 영양 불균형 심화
문화적 다양성 확산 탄소 배출 및 수자원 고갈

결국 슈퍼푸드는 개인에게는 긍정적이지만, 글로벌 차원에서는 부정적 영향을 동시에 만들어내는 이중적 존재다. 이 역설을 직시하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건강한 선택'을 했다는 착각 속에서 실제로는 불평등과 환경 파괴를 가속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나의 생각: 건강한 소비, 불편한 진실

퀴노아, 치아씨드, 아보카도는 이제 모두 건강을 상징하는 슈퍼푸드로 자리 잡았다. 나 역시 샐러드 전문점에서 퀴노아가 올라간 볼을 시켜 먹고, 집에서 어머니가 해주신 치아씨드 샐러드를 가족들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왠지 가족들이 건강한 한 끼를 먹는것 같다라는 뿌듯함을 느낀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내가 퀴노아를 맛있게 먹는 동안 페루 농민들은 가격 폭등으로 자기 가족의 식량을 잃고 있지는 않을까? 내가 즐기는 치아씨드가 사실은 멕시코의 소농들에게 생태계 파괴와 토지 손실을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한국에서의 건강한 한 끼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평등과 고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지만 분명한 현실이었다.

※ 다음 글 예고: 슈퍼푸드 시리즈 ② – 슈퍼푸드의 정치경제학, 그리고 한국 식탁
FTA, 수입 구조, 자급률, 한국 식량 안보의 취약성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