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은 달콤한 앙금으로만 기억되는 재료가 아닙니다. 일본의 전쟁기억을 살펴보면, 팥은 전시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한 대체 자원이자 군수물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팥빵과 팥죽은 민중에게는 생존의 상징이었고, 군인들에게는 에너지 공급원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팥이 어떻게 일본 근대사의 전쟁과 정치, 기억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살펴봅니다.
목차
- 1. 팥과 일본 전쟁기억의 시작
- 2. 전시 식량과 군수물자로써의 팥
- 3. 일본군 배급체계와 팥
- 4. 민중의 삶 속 팥과 전쟁의 그림자
- 5. 음식 기억 정치 속 팥의 의미
- 6. 정리하며
1. 팥과 일본 전쟁기억의 시작
팥은 일본 근대사 속에서 단순한 디저트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19세기말, 제국주의 확장과 함께 일본은 전쟁을 일상화한 사회 구조로 이동했는데, 이 과정에서 식량 문제는 늘 국가적 의제가 되었습니다. 일본 농림성 통계(1930년대)에 따르면, 밀·쌀 같은 곡물의 수입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대체 작물의 필요성이 강조되었고, 팥은 ‘전시에 활용 가능한 고열량 자원’으로 주목받았습니다. 단팥빵이나 팥죽은 민간에서 단순 간식으로 소비되었지만, 정부와 군 당국의 시선은 달랐습니다. “팥은 저장성과 공급성을 갖춘 전략적 자원”이라는 평가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점차 팥은 전쟁 기억의 한복판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2. 전시 식량과 군수물자로서의 팥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은 본격적인 전시체제에 돌입했습니다. 아사히신문(1938년 9월)은 “팥은 국민식량의 새로운 가능성”이라는 기사를 실으며, 쌀과 밀을 대신할 대체 자원으로 팥을 강조했습니다. 이 시기 발표된 군사 관련 자료에서는 팥을 건조·가공해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는 점이 군수물자화의 근거로 제시되었습니다. 특히 팥 앙금을 건조 분말로 만들어 보급품으로 활용하거나, 군용 빵에 섞어 넣는 방식이 등장했는데 이는 군인들의 칼로리 보충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민간에서의 팥 소비를 크게 줄였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팥은 배급과 군수물자의 이미지”로 각인되며 달콤함 뒤에 전쟁의 그림자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3. 일본군 배급체계와 팥
전시 일본군의 배급체계는 곡물 중심이었지만, 보급의 안정성을 위해 다양한 대체 자원을 활용해야 했습니다. 국제적십자사(ICRC) 전시 보고서(1942)에 따르면, 일본군은 병사들의 칼로리 보급을 위해 쌀·보리·옥수수와 함께 팥을 중요한 보조 식품으로 사용했습니다. 당시의 군사 훈련 교범에서는 팥죽과 팥빵이 장병들의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음식으로 기록되기도 했습니다. 전투 현장에서 군인들이 남긴 편지나 일기는 팥죽이 ‘전장의 추위를 견디게 한 따뜻한 한 끼’였다고 서술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팥죽은 부족한 식량 상황을 상징하는 군수식”으로 각인되었고, 이는 오늘날 전쟁기억 속에서 팥이 가진 모순적인 이미지를 잘 보여줍니다.
4. 민중의 삶 속 팥과 전쟁의 그림자
전쟁은 민간 사회에서도 팥의 의미를 크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요미우리신문(1943년)은 배급 체계 강화로 인해 팥의 민간 소비가 급감했음을 보도하며, 평범한 가정에서 팥죽은 ‘사치스러운 음식’이 되어버렸다고 전했습니다. 당시 도시에서는 결혼식이나 제사의 팥밥조차 구하기 어려웠고, 농촌에서도 군수물자 수탈로 인해 팥은 자급조차 힘들어졌습니다. 민중의 기억 속에서 팥은 “달콤한 간식”이 아니라 “전쟁의 그림자”로 남게 된 것이죠. 이러한 경험은 전후에도 이어져, 일본 사회에서 팥은 ‘전쟁기의 고통을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5. 음식 기억 정치 속 팥의 의미
전쟁이 끝난 뒤에도 팥은 단순한 재료가 아닌 ‘기억의 매개체’로 남았습니다. 일본 전후 문학에서는 팥죽 한 그릇이 빈곤과 상실을 상징하는 장치로 자주 등장했습니다. 예컨대 오에 겐자부로의 전쟁 서사 속에서는 전쟁고아가 배급소 앞에서 단팥빵을 갈망하는 장면이 묘사되는데, 이는 단순한 배고픔을 넘어 국가가 남긴 상흔을 은유합니다. 또한 국제음식기억연구소(Imaginary Institute for Food Memory, 2019 보고서)는 음식이 ‘집단기억 형성’에 기여한다는 분석을 내놓았는데, 일본 사회에서 팥은 바로 그 기억 정치의 전형적인 사례로 거론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오늘날에도 팥이 들어간 일본 전통 과자가 ‘달콤한 간식’으로 소비되는 한편, 노년 세대에게는 여전히 전시 배급의 고통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입니다. 이처럼 팥은 세대별로 다른 의미를 가지며, 전쟁의 기억을 전승하는 독특한 통로가 되고 있습니다.
6. 정리하며
팥은 단순한 식재료로 보이지만, 일본 전쟁기억 속에서 복잡한 상징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전시에는 군수물자와 배급품으로, 민중에게는 고통의 상징으로, 전후에는 기억 정치의 매개체로 기능했습니다. 이는 음식이 단순히 영양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문화적 의미를 담는 강력한 기호임을 보여줍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팥을 둘러싼 이중성—달콤함과 쓰라림의 공존—이 음식사 연구의 흥미로운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독자 여러분께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 음식 한 재료가 전쟁, 기억, 혹은 집단적 상처와 연결된 경험이 있습니까? 그 경험은 어떻게 오늘의 우리의 정체성에 스며들고 있을까요?
▶더 깊은 이해를 원한다면 다음 자료를 참고해 볼 수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글로벌 곡물·식량 동향
FAO: 전쟁과 식량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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