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과 아시아의 기억
팥은 일본 본토의 전쟁기억만이 아니라 식민지 조선과 아시아 민중의 삶에도 깊은 흔적을 남겼습니다. 전시체제 속에서 일본 당국은 식량 공출 정책을 통해 팥을 비롯한 곡물을 대량으로 수탈했고, 이는 조선과 만주의 민중에게 굶주림과 상실의 기억으로 이어졌습니다. 단팥죽과 팥밥은 본래 축제와 제사의 음식이었지만, 전쟁기에는 국가의 군수물자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식민지 조선과 아시아 민중이 경험한 팥과 전쟁기억의 교차점을 살펴보고, 그것이 오늘날 어떤 기억의 층위를 형성했는지 탐구해 보겠습니다.
목차
1. 식민지 조선의 팥 공출 정책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팥은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제국을 위한 자원’으로 간주되었습니다. 1939년 국가총동원법 이후 일본은 조선총독부를 통해 곡물 공출 제도를 강화했는데, 쌀·보리와 더불어 팥도 주요 대상이었습니다. 조선총독부 관보(1940년대)에는 팥의 공출량 할당이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으며, 농민들은 자급분까지 빼앗기며 생활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습니다. 본래 명절이나 제사의 팥밥은 공동체 결속을 상징했지만, 전시에는 국가 권력이 이를 군수물자로 전환시켜 버린 것입니다. 많은 구술사 자료에서 당시 농민들은 “팥죽조차 사라진 시절”을 가장 뼈아픈 기억으로 회고합니다.
2. 만주와 아시아 전역의 팥 수탈 구조
일본의 식민지 지배는 조선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만주와 중국 화북 지역에서도 팥은 전략적 곡물로 규정되어 대규모 수탈이 이루어졌습니다. 국제연맹 보고서(1936년)는 일본이 만주 농업을 ‘군수 경제의 곡창’으로 개편했다고 분석하며, 그 과정에서 팥·콩·옥수수가 집중적으로 징발되었다고 기록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팥이 단순히 일본 본토 군수품으로 흘러들어 갔을 뿐 아니라, 전시 무역망을 통해 독일·이탈리아 등 추축국으로까지 일부 수출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즉, 팥은 아시아 현지 민중에게는 결핍과 고통의 상징이었지만, 국제 전시 경제 속에서는 ‘제국의 전쟁을 뒷받침한 보이지 않는 물자’로 기능했던 셈입니다.
3. 민중의 일상 속 팥과 결핍의 기억
식민지 조선의 민중에게 팥은 결핍과 상실의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본래 겨울철 팥죽은 동지를 기념하는 공동체 의례였지만, 전시에는 사라져 버린 음식이 되었습니다. 동아일보(1942년 12월)는 “올해 동지에는 팥죽을 찾을 수 없다”는 기사를 실으며, 일상 속 풍속이 어떻게 전시체제에 의해 붕괴되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농촌 구술 자료에서는 어린아이들이 팥죽 대신 옥수수죽이나 고구마죽을 먹으며 “붉은 앙금을 그리워했다”는 기억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한 식량난을 넘어 문화적 상실이자, 전쟁이 남긴 생활사의 상처로 자리 잡았습니다.
4. 음식 저항과 문화적 기억으로서의 팥
그러나 팥은 단지 빼앗긴 자원만은 아니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은밀하게 팥죽을 쑤어 공동체 연대를 확인하거나, 팥밥을 나누며 ‘제국의 명령에 맞서는 상징적 행위’를 이어갔습니다. 한국역사연구회 보고서(2015)에 따르면, 전시기 음식은 단순히 생존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에 대한 저항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팥죽을 지켜내는 행위 자체가 일상의 작은 저항이었고, 이는 해방 이후에도 “팥죽은 우리 것을 지켰던 기억”이라는 서사로 전승되었습니다. 일본 내 일부 지식인들도 일기와 소설 속에서 ‘빼앗긴 팥’을 언급하며 전쟁 체제를 비판했는데, 이는 음식이 어떻게 정치적 의미를 띠며 기억의 장치로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5. 생각해 보면
식민지 조선과 아시아 민중에게 팥은 단순한 식재료가 아니라 전쟁기억의 상징이었습니다. 공출 정책과 수탈 구조는 팥죽과 팥밥 같은 일상적 음식을 빼앗아갔고, 민중의 기억 속에서는 ‘결핍과 상실의 붉은 흔적’으로 남았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은밀히 이어진 팥죽 나눔은 공동체의 결속과 저항을 표현하는 중요한 문화적 행위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팥이 보여준 이중성이, 음식이 권력과 기억을 동시에 담아낼 수 있는 가장 선명한 증거라 생각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쟁을 직접 겪지 않았지만, 음식이 지닌 정치적·역사적 의미는 여전히 우리 삶 속에 남아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음식에서 역사적 상처나 집단적 기억을 떠올린 적이 있습니까? 그 기억은 어떻게 오늘의 우리의 문화와 정체성에 스며들고 있을까요?
▶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참고할 만한 자료를 덧붙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식민지 시기 곡물 공출 관련 기록
The Asia-Pacific Jhttps://apjjf.org/ournal: Japan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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