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뒤에도 팥은 일본 사회에서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기억의 매개체’로 남았습니다. 폐허 속에서 단팥빵은 민중에게 달콤한 위로였고, 동시에 전쟁기의 결핍을 떠올리게 하는 상징이었습니다. 1950~60년대 경제 부흥기에는 팥을 활용한 제과 산업이 일본의 성장서사와 함께 발전했지만, 노년 세대에게 팥은 여전히 전쟁기 배급과 굶주림의 기억을 환기시켰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전후 일본에서 팥이 어떻게 기억 정치와 문화 외교의 소재가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목차
1. 전후 복구와 단팥빵의 재등장
패전 직후 일본은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렸습니다. 미군정 자료와 일본 농림성 보고서에 따르면, 1945~47년 사이 일본 국민의 칼로리 섭취량은 전전의 6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 단팥빵은 단순한 빵이 아니라 ‘달콤한 복구의 상징’으로 부상했습니다. 제분업자와 제과업자는 밀가루 원조에 팥앙금을 더해 서민들에게 값싼 빵을 공급했고, 이는 전후 사회에서 ‘희망을 맛보는 경험’으로 회자되었습니다. 신문 기사에서는 단팥빵을 ‘패전국 일본이 다시 일어서는 달콤한 증거’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음식이 노년 세대에게는 전쟁기의 배급 빵을 떠올리게 하며 복합적인 감정을 자아냈습니다. 이처럼 단팥빵은 세대와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띤, 전후 일본의 기억을 보여주는 상징적 존재였습니다.
2. 경제 부흥과 팥 산업의 성장
1950년대 이후 일본은 ‘고도 경제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급속한 산업화를 경험했습니다. 이 시기 팥 산업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농림성 통계 연보에 따르면 1955년 이후 팥 재배 면적은 꾸준히 확대되었고, 소비량 역시 도시 인구 증가와 맞물려 상승 곡선을 그렸습니다. 특히 단팥빵과 도라야키 같은 제품은 도시 노동자와 학생들의 간식으로 자리 잡으며 ‘서민 경제의 지표’ 역할을 했습니다. 아사히신문(1964년)은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팥 앙금을 활용한 제과 생산량이 전후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하며, 팥이 더 이상 결핍의 상징이 아니라 ‘성장의 맛’으로 자리 잡았음을 강조했습니다.
이 같은 흐름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그래프를 보면, 1950년대 대비 1970년대의 팥 생산량과 소비량이 두 배 이상 늘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생산과 소비의 동반 성장은 단순한 경제 지표를 넘어, 일본 사회가 결핍에서 풍요로 전환되는 과정의 서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이 과정이 전쟁기 기억을 지워내는 효과를 낳았다고 지적했습니다. 즉, 산업적 풍요 속에 과거의 굶주림은 점차 잊히고, ‘팥’은 전쟁의 흔적이 아닌 성장의 달콤한 상징으로 재포장된 셈입니다.
3. 세대별 전쟁기억과 팥의 상징성
전후 일본 사회에서 팥은 세대별로 전혀 다른 기억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전쟁을 직접 겪은 노년층에게 팥죽이나 단팥빵은 배급과 결핍을 떠올리게 하는 ‘쓰라린 기억’이었지만, 전후 세대에게는 학교 매점에서 사 먹던 달콤한 간식으로 각인되었습니다. NHK 세대별 조사(1995)는 “전쟁세대는 단팥빵을 먹을 때 전쟁을 떠올린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으나, 젊은 세대는 “일본인의 일상적 간식”이라고 답하며 인식 차이를 드러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음식이 세대별로 다른 의미를 지니는 현상은, 음식이 기억과 정체성을 매개하는 중요한 장치임을 보여줍니다. 또한 이러한 세대 차이는 오늘날 일본의 역사인식 논쟁에서도 미묘하게 작용하며, 팥은 ‘기억 정치’의 은유로 기능합니다.
4. 음식 외교와 팥의 문화적 재해석
1960~70년대 일본 정부는 팥을 비롯한 전통 식재료를 국제 교류의 매개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외무성 문화국 보고서(1972년)는 세계 박람회에서 단팥빵과 팥양갱이 일본의 대표 간식으로 소개되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시 미국 언론은 이를 ‘달콤한 동양의 맛’이라고 묘사했으며, 유럽 시장에서도 팥은 건강식으로 인식되며 호평을 받았습니다. 일본 제과업계는 이를 계기로 팥을 활용한 상품을 적극적으로 수출했고, 결과적으로 팥은 국가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는 도구로 기능했습니다.
아래의 그래프는 전후 일본 제과 수출액 중 팥을 활용한 제품의 증가 추이를 보여줍니다.
1955년 이후 수출액이 꾸준히 상승하며, 1970년대 들어서는 전후 일본 식품 산업의 국제화를 이끄는 주요 품목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단순한 ‘달콤한 성공’만은 아니라고 평가합니다. 음식 외교라는 이름 아래, 전쟁과 결핍의 기억이 지워지고, 팥이 국가 이미지 세탁의 재료로 활용되었다는 비판도 공존했습니다. 따라서 팥은 일본 사회에서 경제·외교·기억이 교차하는 다층적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5. 마무리하며
전후 일본 사회에서 팥은 단순한 간식 재료를 넘어, 기억과 정치가 교차하는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단팥빵은 전쟁 직후 복구의 상징이자 희망의 빵이었고, 동시에 전쟁세대에게는 결핍과 배급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모순적 존재였습니다. 경제 성장기에는 산업화된 팥이 국가 브랜드의 일부로 세계에 홍보되었지만, 이는 전쟁기의 고통을 지우려는 기억 정치로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팥이 보여준 ‘달콤함과 쓰라림의 공존’이 음식사 연구의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날에도 음식은 단순한 영양 공급원이 아니라, 사회가 기억을 구성하고 정체성을 표현하는 매개체입니다. 독자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기억하는 음식 속에는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집단적 기억이 스며들어 있습니까?
▶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참고할 만한 자료를 덧붙입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전시기 곡물 공출 관련 기록
The Asia-Pacific Journal: Japan Foc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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